훈련소에서 심심할 때마다 편지지 뒷편에 틈틈이 그린 그림.
요새 게시글이 뜸했는데, 사실 지난 한 달(10월 24일부터 11월 21일까지)동안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나왔습니다. 보충역도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의무로 다녀와야 하는데, 이직을 했다는 핑계로 미루다가 이번 기회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조금 늦은 나이에 훈련소를 가기도 했고 체력도 그닥 좋은 편이 아니라 걱정을 많이 하긴 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무사히 수료했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습니다.
짧은 군생활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거기서 겪었던 모든 경험들이 참 주옥(?)같긴 한데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생각보다는 버틸만 했던 거 같습니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일찍이 훈련소를 다녀온 몇몇 분들은 재밌었다고도 얘기를 하던데… 흠…ㅎㅎ(긁적긁적)
아무튼 이번 포스트는 평소와는 다르게 군생활을 다뤄볼 예정입니다. 안 그래도 훈련소에서 느꼈던 감상들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 매일마다 수첩에 일기를 열심히 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포스팅을 작성해볼까 합니다.
이번 포스트를 통해, 논산 육군훈련소 입소를 앞둔 산업기능요원 또는 사회복무요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국방의 의무를 끝내신 분들께서는 아, 내가 이렇게 뺑이(?)쳤었지… 라고 잠시 추억에 젖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2019년 10월~11월 육군훈련소 기준이며, 연대나 중대 별로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준비물
준비물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나무위키의 기초군사훈련 문서나 awesome-nonsan이라는 리포지토리가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여기를 주로 참고했던 것 같습니다.
이발은 입영 하루 전날 기준으로 옆머리와 뒷머리는 6mm, 윗머리는 9mm로 잘랐는데 이 정도면 수료까지는 자르지 않고 버틸 수 있습니다. 수료 직전에 자르라고 하긴 했는데 존버하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챙겨갔던 준비물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좀 많긴 한데, 거의 다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 신분증, 나라사랑카드: 본인 확인 및 병역 처리에 필요한 준비물이므로 꼭 챙기도록 합니다.
- 손목시계: 군대는 분 단위로 명령을 하고 대부분의 하루 일과를 실외에서 보내기 때문에 꼭 챙기는 것을 추천합니다. 훈련 도중에 흠집이 나기 쉬우니 저렴하면서 튼튼한 디지털 시계를 추천합니다.
- 여행용 티슈, 물티슈: 보급으로 두루마리 휴지 1개와 갑 티슈 1개를 주는데 이걸로 한 달을 써야 합니다. 쓸 일이 많기 때문에 부족할 수 있습니다. 부피는 작으면서 양은 많이 챙길 수 있는 여행용 티슈를 챙기는 것을 추천합니다.
- 유성매직, 필기구: 주기(보급받은 물품에 이름이나 교번을 쓰는 것)를 하거나 편지를 쓸 때 유용합니다.
- 안경닦이: 안경 쓰시면 챙겨가세요.
- 라이트펜: 꼭 펜이 아니더라도 불빛을 낼 수 있는 것이라면 밤에 유용하긴 합니다.
- 면봉: 총기 손질하거나 위생 용품으로 유용합니다.
- 우표: 군사우편은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편지를 보낼 수 있으나, 도착까지 걸리는 기간이 평균 10일 정도로 길기 때문에 편지를 빨리 보내고 싶을 때 사용합니다. 10~20개 정도면 넉넉한 것 같습니다.
- 귀마개: 사격 훈련 때 나눠주긴 하는데, 그 전까지 전우들의 코골이로 밤잠을 설치고 싶지 않다면 챙기세요.
- 책: 저는 책이 잘 안 읽혀서 괜히 가져간 거 같은데 다른 분들은 책을 엄청 많이 읽으시더라구요. 개인 취향껏 한 두 권 가져가도 좋습니다. 참고로 소대 별로 책들이 마련되어 있긴 합니다.
- 팔꿈치, 무릎 보호대: 사격 훈련이나 각개전투 때 팔꿈치로 온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훈련들이 있습니다. 이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이므로 반드시 챙겨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 바디워시, 샴푸, 폼클렌징, 샤워 타올: 보급으로 나눠주는 세면용품은 비누 하나 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필요에 따라 챙겨가면 좋습니다.
- 로션, 핸드크림, 선크림, 립밤: 군대에서도 관리는 해야겠죠? 특히 겨울철이라면…
- 수건, 칫솔, 치약: 보급이 품질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잃어버릴 일이 잦기 때문에 챙겼습니다.
- 비타민제: 약처럼 생겨서 뺏길 위험이 있는데 저는 안 뺏겼습니다. 아무래도 단체생활을 하다보면 면역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틈틈이 챙겨먹으면 은근 도움이 됩니다.
- 감기약: 군대에서는 상비약이라 하더라도 군의관의 처방 없이는 함부로 약을 복용할 수 없습니다. 원래는 제출해야 하는데, 저는 안내고 꽁쳐놨다가 한 알 씩 몰래 꺼내먹었습니다.
- 위장크림: 나눠주는 위장크림은 거의 구두약(…) 수준이라서, 피부 관리를 하시려면 하나 챙겨가셔도 좋습니다.
- 연락할 전화번호와 주소, 우편번호: 가족이나 지인들에게서 편지나 전화를 하기 위해 꼭 챙기세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 보조배터리: 보충역의 경우 스마트폰을 4주간 보관하고 수료할 때 나눠줍니다. 수료 직후, 배터리가 없어서 검은 화면만 보게 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가져갑니다.
이 외에도 제가 가져가지는 않았는데 가져갔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풀: 정작 우표는 가져갔는데 풀을 안 가져가서 처음 며칠 동안은 우표를 붙이질 못했습니다. 나중에 생활관 별로 나눠주긴 했는데, 없어서 불편했기 때문에 미리 챙겨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물집방지패드: 군화를 길들이는데도 시간이 걸리다보니… 저는 발에서 물집이 잡혀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입영 당일
이보다 더 제 심정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입영 당일은 오후 2시까지 논산 육군훈련소에 도착해야 합니다. 저는 아침 일찍 본가에서 부모님 차를 타고 출발을 해서 오전 11시 쯤에 논산 육군훈련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호국요람의 문을 마주치니까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근처에는 식당 주인이라던가 잡상인들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훈련소 앞의 식당들은 맛이 없고 비싸니 절대 가지 말라고 익히 들은 바가 있기 때문에 좀 멀리 떨어진 백반집을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입소를 1시간 앞두고 먹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아무튼 점심을 먹고 다시 육군훈련소로 향했습니다. 훈련소 안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통화를 한 후, 통신사 어플로 휴대폰 정지를 했습니다.
제가 입소할 때는 입영 행사가 별도로 없었기 때문에 2시 반부터 워리어홀 이라는 건물로 바로 입장을 했습니다. 부모님과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데 참 울적했습니다. 4주간 훈련소를 가는 것도 이렇게 막막한데, 실제 현역들이 부담감은 얼마나 클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역한 친구들이 부러우면서도 새삼 존경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입소할 때는 전국에서 사회복무요원과 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 약 1200명이 모였기 때문에, 복무 지역 및 복무 형태로 1차 분류 작업을 거친 뒤 2차로 연대 및 중대를 구분하는 작업을 합니다. 이 때 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이라고 해서 별도의 중대로 분리되는 것은 아니며, 사회복무요원과 함께 편성됩니다. 그 후, 입소 인원 체크 및 간단한 신상 정보 확인을 한 후 육군훈련소 앞의 육교를 건너서 약 20분 정도 걸어가다보면 막사가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정말 본격적인 4주간의 군생활이 시작됩니다.
훈련
여기서부터는 입소한 훈련병들이 받게 될 주요 훈련 목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별도로 열외를 받지는 못해서 않아서 모든 훈련을 풀코스(…)로 받고 왔습니다. 예상 난이도와 실제 난이도, 교정 간의 이동 거리를 적어놓았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교정 간 거리는 보충역 연대 기준입니다.
제식훈련
국기에 대하여~ 경례! …충!
- 예상 난이도: ⭐
- 실제 난이도: ⭐
- 교정 간 이동 거리: 연병장(약 2분)
크게 맨손제식과 그리고 총기를 들고 하는 집총제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부대 차렷, 열중 쉬엇, 받들어 총 처럼 군인으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 제식을 연습하는 훈련입니다. 처음으로 받는 훈련이고 기초를 다루는 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쉬운 훈련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화생방 훈련
가스! 가스! 가스!
- 예상 난이도: ⭐⭐⭐⭐⭐
- 실제 난이도: ⭐⭐⭐
- 교정 간 이동 거리: 화생방훈련장(약 40분)
그 특유의 공포감 때문에 TV 매체에서도 많이 출연했던 화생방 훈련입니다. 훈련장이 산 중턱에 있고, 군장을 메고 가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에도 난이도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주워들은 공포심 때문에 그렇지, 훈련 자체는 생각했던 것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보충역인만큼 가스의 강도가 조금 낮은 편이기도 했고요. 제가 받은 훈련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 방독면과 정화통을 결합한 상태로 가스실에 입장
- 가스실 안에서 정화통 결합을 해제하고 10초간 대기
- 다시 방독면에 정화통 결합하고 확인 후 퇴장
침착하게 숨을 꾹 참을 수 있고, 버벅거리지만 않는다면 30초 이내에 끝낼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정화통 결합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피부가 가스에 노출되긴 했는데, 엄청 매운 불닭볶음면 소스가 피부에 발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좀 따끔따끔하긴 한데 TV에서 본 것만큼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는 훈련병은 못 본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다만 일정 확률로 방독면이 불량인 게 있어서 정화통을 결합하지 않더라도 숨이 쉬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음… 행운을 빕니다.
사격
조정간 단발! 격발!
- 예상 난이도: ⭐⭐
- 실제 난이도: ⭐⭐⭐⭐
- 교정 간 이동 거리: PRI 훈련장(약 15분), 영점사격장(약 20분), 자동화사격장(약 20분)
오락실에서 BB탄으로 쏘는 인형뽑기 사격을 생각했었는데… 정말 큰 오산이었습니다.
우선 총기는 K2 소총을 사용합니다. 총기 반동은 쉽게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주먹으로 가볍게 어깨를 툭툭 내려치는 정도라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안경을 낀 사람이라면 반동 때문에 안경 렌즈에 흠집이 날 수도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사격은 크게 PRI(사격술 예비 훈련) 훈련, 영점 사격, 기록 사격 이렇게 3개의 훈련을 3일간의 일정에 맞춰 훈련을 받게 됩니다.
PRI는 땅바닥에 엎드려서 K2 소총을 조준하는 엎드려쏴 자세를 움직이지 않고 계속 유지하고 있는 훈련입니다. 이 때 팔꿈치로 총을 포함한 상체를 지탱해야 하는데, 이게 엄청 힘듭니다. 바닥에 고무매트가 깔려있긴 하지만 사실상 돌바닥입니다. 저는 팔꿈치 보호대 하나로는 부족해서, 그 안에다가 양말을 쑤셔넣은 덕분에 조금이나마 편하게 훈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점 사격에서는 비로소 실탄 사격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약 20~25m 거리에 있는 A4 용지 크기의 표적지에 5cm 안으로 탄착군이 형성되면 됩니다. 다만 표적이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저는 3차 만에 통과했습니다.
기록 사격에서는 참호 안에서 쏘는 입사호쏴 자세로 10발, 엎드려쏴 자세로 10발을 쏘게 되며 표적은 100m, 200m, 250m에서 총 20번 등장합니다. 보충역의 경우 20발 중 10발을 맞히면 합격입니다. 저는 기록사격을 조졌기 때문에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영점 사격이나 기록 사격의 성적이 부진할 경우 주말에 보충교육을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열심히 하는 게 좋습니다.
수류탄 훈련
안전고리는 탄피와 같으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 예상 난이도: ⭐
- 실제 난이도: ⭐⭐
- 교정 간 이동 거리: 수류탄훈련장(약 15분)
현역들과 달리 세열 수류탄을 사용하지 않고 연습용 수류탄을 사용합니다. 연습용 수류탄은 황토로 만들어져 있어서 폭발 시에도 부상 위험이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수류탄의 크기는 한 주먹에 잡히는 작은 크기지만 무게가 약 250g으로 생각보다 묵직합니다.
훈련을 받기 전에 안전고리는 탄피와 같은 것이라 잃어버리면 절대 안된다 고 설명을 해 줍니다만, 훈련하다보면 안전고리를 함께 던지는 인원이 분명히 한 두명은 나옵니다. 교정 간 거리도 가까운 편이라 이것만 주의한다면, 한 타임 쉬어가는 훈련으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각개전투
훈련은! 전투다! 각! 개! 전! 투!
- 예상 난이도: ⭐⭐⭐
- 실제 난이도: ⭐⭐⭐⭐⭐
- 교정 간 이동 거리: 충성훈련장(약 20분), 각개숙달훈련장(약 70분), 각개종합훈련장(약 70분)
FPS 게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각개전투입니다. 훈련 난이도도 상당하지만, 교정 간 이동 거리 역시 악명이 높습니다.
우선 다른 훈련장과 비교했을 때 교정 간의 거리가 가장 멉니다. 그냥 가는 게 아니라 군장을 싸고 가기 때문에 더 힘듭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는 하필 각개전투 복귀 때 비가 내려서 엄청 춥고 발바닥이 부서질 것처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위의 이유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훈련장으로 출발하고 해가 질 때 쯤에 복귀를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점심을 영외에서 먹게 되는데, 그 유명하다는 비닐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맛은 솔직히 처음엔 먹을 만 한데 한 두 번 먹다보면 물립니다.
보통 위장 크림을 바르고, 철조망 밑을 등으로 기어간다거나, 흙과 돌바닥에서 포복과 약진을 반복하는 것처럼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훈련들을 합니다. 이 때문에 훈련복이 황토로 물드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참고로 종합각개훈련 때에도 기록을 재기 때문에, 성적이 부진하면 주말에 보충교육을 갈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각개전투는 보통 합격률이 95% 이상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행군
- 예상 난이도: ⭐⭐⭐⭐⭐
- 실제 난이도: ⭐⭐⭐
- 교정 간 이동 거리: 총합 약 5시간
기초군사교육의 마지막 훈련이라 할 수 있는 행군입니다. 저는 완전군장으로 20km를 걸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만 생각보다는 할 만 했습니다.
우선 완전군장 말고도 개인별로 감량군장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보통 완전군장이 20kg, 감량 군장은 12kg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감량군장을 했습니다. 근데 완전군장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있더라구요. 좀 놀랐습니다. (블랙말랑카우?)
행군 코스는 영외 훈련장 두 군데를 찍고 나서 육군훈련소를 크게 한 바퀴 빙 도는 것이었는데, 보통 4050분 정도 걷고 1020분 정도 쉬는 것을 총 다섯 번 반복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생각보다 쉬는 시간을 널널하게 주기도 했고, 코스도 한 번 다녀온 훈련장을 찍고 오는 거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생활
이렇게 대략적인 훈련에 대해 살펴보았고, 지금부터는 입소한 훈련병들이 4주간 지내게 될 훈련소 생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종교
2019년 완공된 기독교 교회에서는 약 5,000명 규모의 훈련병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원래 무교입니다. 하지만 훈련소에 있을때는 웬만하면 종교는 꼭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종교활동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래서 세례식(기독교)과 수계식(불교)도 다녀왔습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주간/야간 총 두 타임의 종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주간 종교에 참석할 경우, 어느 종교를 가더라도 부식을 통일해서 주기 때문에 아무데나 가도 상관이 없지만 야간 종교는 그런 제한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각 종교별 특성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기독교(도보 10분):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러 갑니다.
- 불교(도보 20분): 여자 댄스팀의 위문공연을 구경하러 갑니다.
- 천주교(도보 15분): 부식을 많이 받으러 갑니다.
- 원불교(도보 15분): 장기자랑에 출연/구경하러 갑니다.
기독교에서는 주로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CCM도 많이 틀어주는데, 특히 그 유명하다는 실로암 을 떼창으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종교행사는 현역과 보충역을 가리지 않고 한 번에 모이기 때문에 많을 때는 4~5천여 명이 모이게 됩니다. 그만큼 통제가 잘 안되는데 이게 또 다른 연대 사람들끼리 서로 놀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는 재밌어서 매주 갔습니다.
불교에서도 종교 행사를 하긴 하는데 로터스 라는 찬불율동단(…)이 옵니다. 사실 불교를 오는 이유 그 자체이며, 여자 댄스팀이 오는 만큼 훈련병들의 화력이 장난이 아닙니다. 대중가요에 맞춰 대여섯곡의 댄스 공연을 펼치지만, 그 만큼 A급 좌석의 경쟁이 빡셉니다.
천주교는 가장 재미가 없는 종교(…)로 소문났습니다. 다만 그만큼 적은 인원이 가기 때문에, 고급 간식을 많이 받아오더라구요. 제가 천주교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야간 천주교에 갔다 온 훈련병들이 수제햄버거와 포카칩을 받아 오는 걸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원불교는 가장 존재감이 없는 종교입니다. 하지만 슈퍼스타 훈련병 이라는 재밌는 컨텐츠가 있는데, 바로 장기자랑입니다. 원불교에는 한 번 가봤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노래나 춤처럼 남들 앞에서 뽐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원불교를 가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불침번
각 소대별로 훈련병들이 돌아가면서 취침 시간 중에 불침번을 섭니다. 즉, 새벽에 깨어나서 전투복을 입고서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멀뚱하게 한 시간을 서 있어야 합니다. 이게… 참 극혐입니다. 특히 힘든 훈련을 하고 난 당일 새벽에 불침번이 있다면…
대략 사나흘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섭니다. 보충역 기간이 4주인 것을 감안하면, 대략 8~9번 정도를 서게 되는 셈이죠. 라이트펜을 가져갔다면 이 시간대에 몰래 편지를 읽고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연락
입영일 기준으로 그 다음 주 화요일부터 훈련병에게 인터넷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편지는 육군훈련소 홈페이지의 내 자녀 찾기 또는 더캠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보낼 수 있습니다.
육군훈련소 내 자녀 찾기에서 편지를 보낼 경우에는 따로 가입할 필요 없이 본인 인증만으로 간편하게 편지를 보낼 수 있지만 800자 글자 제한이 있습니다. 더캠프 앱은 별도로 가입하는 절차가 있지만, 글자수 제한이 넉넉하고 사진을 첨부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때 사진은 흑백으로 출력되어 훈련병에게 전달됩니다.
아무리 4주라고 해도 사회에서 전달받는 인터넷 편지는 훈련병에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그러니 입소하기 전에 믿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를 통해 본인 SNS에 인터넷 편지를 쓸 수 있는 주소를 게시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화 통화의 경우 중대/연대별로 차이가 크지만 저의 경우 1회당 5분의 시간을 주었고, 주말 1회 + 평일 1회로 생각보다 넉넉하게 주었습니다. 추천하지는 않지만 중대장/소대장/분대장 훈련병을 맡게 되면 전화시간을 좀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4주를 버티면
그 날이 오긴 하더라구요. 수료식은 보통 오전 10시 반에 시작해서 오전 11시 쯤에 수료식이 끝나게 됩니다. 그 후 생활관으로 북귀해서 입소할 때 입고 온 사복으로 환복한 뒤, 스마트폰을 돌려받게 됩니다.
한 달만에 스마트폰을 손에 쥐니까 참 낯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원을 켜면 쏟아진 카톡, 페북, 인스타, 메일, 푸시알람을 확인할 때면 아, 진짜 내가 사회로 나왔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그 날은 정신없이 연락하면서 하루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참 웃긴 게,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왜곡이 되는 거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옥같고 짜증났던 것들을 수첩에다가 열심히 적었었는데, 정작 밖에 나와서 수첩을 다시 들여다보니까 별 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건 제 주변에 현역으로 전역한 친구들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좀 웃기지만 철학적(?)인 관점으로는… 국가라는 커다란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도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공부를 잘했어도, 좋은 학교를 나왔더라도, 좋은 직장을 다녔더라도 훈련소 안에서는 다 똑같은 빡빡이 훈련병일 뿐이니까요. 내가 여태까지 지내왔던 평범한 일상들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많이 느꼈던 한 달이었습니다.
아무튼 사회에 돌아와보니 역시 사회가 좋습니다. 나가면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다짐했었는데, 요 다짐만큼은 잊지 않도록 노력해보아야겠습니다.
TMI
- 11월 1일은 육군훈련소 창설일이라 훈련을 쉽니다.
- 훈련소에서도 생일을 맞이하는 훈련병에게 쌀케이크를 줍니다.
- 통곡의 다리를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 훈련소에서는 우유곽을 V자로 찢어서 버립니다.
- 샤워장이 막사 외부에 있고, 바닥이 너무 더럽습니다.
- 가끔 분대장들이 알약으로 된 비타민C를 나눠주기도 합니다.
- 감기 예방을 위해 아침 저녁으로 소금가글을 시키는데 이게 효과가 있나… 싶습니다.
- 군대리아는 핫도그형이 제일 맛있었습니다.
- PX 갈 때 간식을 너무 많이 사지 않도록 합니다. 어짜피 옆 사람들도 다 못먹어서 남깁니다.
- 불교의 수계식을 가면 법명(法名), 천주교의 영세식을 가면 세례명을 지어줍니다. 기독교의 세례식은 따로 세례명을 안 줍니다.
- 기독교 CCM이 은근 노래가 좋습니다.
- 말로만 들었던 판초우의는 쌉쌉쌉극혐입니다.
- 은근히 부식을 꽤 많이 줍니다.
- 30시간 훈련 열외 시 퇴소 조치가 되어서 나중에 다시 재입소(…)해야 합니다.
- 멸공의 횃불은 군가로 안 가르쳐줍니다.
- 평일은 6시 기상, 주말은 7시 기상입니다. 취침 시간은 22시로 동일합니다.
- 주변에 축사가 있어서 저녁이 되면 똥냄새가 오지게 납니다.
- 수통을 처음 보고 만들어진지 30~40년은 된 줄 알았는데 바닥에 적힌 2017년 제조 …!
- 하지만 영외훈련 때 별도로 생수를 나눠주기 때문에 수통으로 물을 마실 일은 거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