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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IT 산업기능요원 복무 후기.txt

구직, 인턴, 회사생활, 이직, 그리고 복무만료까지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느낀 점을 공유해봅니다.

June 07, 2020


Etc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았던 2020년 5월이 결국은 왔습니다.

복무만료

2018년 5월부터 시작했던 IT 산업기능요원 복무가 약 2주 전쯤에 끝이 났습니다. 2년하고도 14일, 일수로는 총 744일이네요. 처음에는 참 까마득하던 숫자였는데, 막상 복무 만료가 가까워지니 생각보다 더 까마득했던 숫자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포스트에서는 그만큼 길다면 길고, 짧다면 긴(?) 시간이었던 IT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한 썰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사실 산업기능요원 복무에 필요한 조건 같은 글은 인터넷에 찾으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아무래도 주변에서 이런 대체복무 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면, 제대로 된 정보를 분별하기도 힘들고, 막상 글을 읽어도 이해가 잘 안 가는 것들이 많죠. 저 역시도 처음에는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라서 꽤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만 이런 고민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 포스트를 통해 IT 산업기능요원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구직의 도움을, 그리고 현재 IT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중이신 분들에게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세 줄 요약

왠지 긴 글을 읽기 싫어하시는 분이 있을 거 같아서 세 줄 요약을 먼저 박고 시작합니다. 세 줄 요약도 좀 긴 것 같지만…

  • 대학교 3학년이었지만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노베이스 상태였기 때문에 구직이 어려웠고, 이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 어쩌다가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도 산업기능요원 신분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아서 1년 정도 경력을 채우고 이직을 했다.
  • 이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쌓고 사회 생활을 경험하면서 배운 점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IT 산업기능요원이 신체등위에 따라 자격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저의 경우를 미리 말씀드립니다.

  • 4급 보충역
  •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
  • 정보처리관련 자격증은 없었음
  • 정보처리관련 학과(컴퓨터공학과) 5학기 이수로 조건 충족

첫 이력서를 써보다

이력서 너의 포트폴리오 칸은 텅텅 비어있어서 이면지로 써도 되겠구나!

2017년 여름방학 때,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우연히 학교에서 산학연계 인턴십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방학 때, 한 두달 정도 단기로 회사를 다니면서 학점과 함께 소정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죠.

당시에 여태까지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을 내가 사회에서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가 궁금하기도 했고, 거기에 더해서 학점과 지원금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뭔가 유익할 것 같은 생각에 인턴십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개발자로서의 이력서를 처음 써보게 되었죠. 인턴십을 한다는 게 또래에 비해 뭔가 더 어른스럽다는 착각(?)에도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력서 사진 당시 이력서 중 일부 발췌. 지금 다시 보니 전형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글이다. 아니 ㅋㅋ 그래서 님이 할 줄 아는게 모냐고요 ㅋㅋ

하지만 제 생각과는 달리… 이력서는 쉽게 써지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이력서 폼이지만 쓸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서 일 주일동안 머리를 싸맸습니다. 대학생이 아닌, 개발자로서 처음 써보는 이력서였는데, 나의 장점을 소개할 만한 것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바로 2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뭔가 능동적으로 도전한 게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만 했지,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 본적도 없고, 아무 노력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왜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뭐고 어떤 분야의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껏해봐야 산학연계 인턴십인데 회사에서도 거창한 이력서를 기대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처음 이력서를 직접 써 보면서, 내가 개발자로서 도전한 것도, 이뤄낸 것도 없다 라는 것을 직접 느끼게 되니, 스스로에게 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스스로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실력 기르기를 게을리 한 것도 맞습니다.

저런 형편없는 이력서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 회사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회사의 사업분야는 IoT클라우드 쪽이어서 이 분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단기 인턴십인만큼 배움의 깊이가 수박겉핥기 수준이었고, 사실 개발보다는 사무보조에 가까웠다는 것은 함정…

당시에 저는 보충역 미필이었는데 당시 사회복무요원 적체 현상이 심각해서, 언제부터 군복무를 시작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입대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죠… 그래서 입대 날짜가 정확히 정해지기 전까지는 학교를 계속 다니기가 뭣해서, 학교를 휴학하고 회사를 계약직으로 다니게 되었죠.

도전을 결심하다

얘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얘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입대에 대한 기약없는 기다림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던 중에, 주변 사람들의 소개로 IT 산업기능요원 이라는 제도를 알게 됩니다. 대충 회사 다니면서 군복무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 조건이 정작 나에게도 해당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죠. (사실 보충역이면 다 사회복무요원 하는 줄 알았거든요…)

당시에 만났던 한 고등학교 친구가 말하길, 자기는 현역이라서 IT 산업기능요원 구직이 굉장히 빡센데, 너는 보충역이라서 널널한 편이니 왠만하면 무조건 시도해보라 고 이야기를 해줬었습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력서 충격의 여파로 자신감이 굉장히 떨어져 있을 때라, 감히 나 따위가 취직을? 이라고 생각하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알고 지내던 학교 선배가 IT 산업기능요원으로 취직에 성공하고, 당시 계약직으로 다니고 있던 회사의 시니어 분께서도 예전에 자기가 IT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치셨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두 분 다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앞으로도 계속 개발자로서 일할 거라면, 산업기능요원은 병역도 해결하면서 돈도 벌 수 있고,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는 제도 라고 이야기를 해 주셔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자극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점만 있다고 얘기해 주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취업하고부터 적어도 2년 동안은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는거니, 꽤나 정신적으로 힘들거다 라는 말도 덧붙였죠. 실제로 찾아보니까 산업기능요원의 부당대우에 관한 글과 뉴스가 많아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위키에서는 이런 말도 있더군요.

상대적으로 군 복무하는 의무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고 업체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인생이 달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인간대접 못 받고 개처럼 부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유인 즉슨 돈은 최저시급으로 줄수있고 나이도 젊고 일반 정직원처럼 힘들다고 때려치고 나갈수도 없으니 단물빼고 쓴물까지 빼주겠다는 업체의 심리다. 인력을 싸게 쓰기 위해서 산업체 TO를 받으려는 것이지만 너무한 곳도 있고 외노자수준 혹은 그 밑의 수준으로 대접 받는 곳이 많다.

- 나무위키 산업기능요원 문서 중

이 때문에 본가에 계신 부모님께서는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근무 환경이 어떨지 보장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 수습 기간 3개월도 있고, 게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2년동안 살 곳도 찾아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당시에는 마음을 굳게 먹은 상태여서, 힘듦을 각오하고서라도 해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구직을 경험하다

구직 네 이력서는 너무 형편없어서 종이가 스스로 불타는구나!

그래서 당시에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이 가능한 회사들 목록을 찾아보고, 약 20개 정도의 회사를 간추려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당시 제가 메인으로 삼았던 언어는 C++이었고, 스터디로 HTML과 CSS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주로 게임 쪽과 웹 프론트엔드 쪽으로 포지션이 열려 있는 곳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인터넷으로 찾아본 대부분의 회사들이 내걸었던 채용 조건은 열악했습니다. 거의 모든 회사에서 수습 기간으로 3개월을 요구했고(즉, 복무 시작도 전에 3개월을 추가로 근무해야 한다는 의미) 연봉은 최저임금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업계 특성 상 야근이 잦을 수도 있는데 괜찮냐는 질문도 거의 면접 때마다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 이게 진짜 말로만 듣던 산업기능요원의 현실인가? 아니면 이게 말로만 듣던 X소기업의 현실인가?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며 현자타임이 오긴 했지만… 이미 뽑아든 칼이었기 때문에 물러날 수는 없었습니다.

이력서를 좀 다듬긴 했지만 수준이 형편없던 것은 여전해서, 4개의 회사에서 서류 합을 했고, 면접을 통해 2개 회사에 최종합을 했습니다. 한 군데는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회사(이하 A사)였고, 다른 한 곳은 보안 솔루션 회사(이하 B사)였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와중에, A사에서 갑자기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면서(?) 채용이 취소되었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황당했지만 당시에는 빠른 편입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결국 B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B사와는 3개월 간 인턴을 하는 조건으로 산업기능요원 편입을 약속받았고, C++과 WinAPI를 활용한 보안 솔루션 클라이언트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부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 첫 자취방도 계약하고, 당시에 예정되어 있던 사회복무요원 입대도 모두 취소했습니다.

그렇게 그 당시에는 꽃길만 걸을 줄 알았습니다.

보안 솔루션 회사에 들어갔지만

꺼져 네 퇴근시간은 너무나 칼같아서 도저히 인턴 같지가 않구나!

B사는 수습 과정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빡셌습니다. 대충 전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설명하자면…

  1. 서류 접수
  2. 코딩 테스트
  3. 대표와의 면접
  4. 최종 입사 전 1주일간 인턴으로 출근
  5. 제품 이해도 시험
  6. 제품 이해도 PPT 발표
  7. 입사 이후에도 4주 간 과제

보통 채용에 관심을 기울이는 회사라면 새로 입사한 직원의 적응을 도울 수 있는 온보딩(Onboarding) 프로세스가 있는데, 그 프로세스가 우리 회사에 온 걸 환영해요! 라기보다는 우리 회사 제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전까지는 넌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입사 후에 제품 이해도에 대한 쪽지 시험을 보고, 대표 앞에서 PPT 발표를 했습니다. 한 번은 제 PPT가 맘에 안들었던지, 대표는 저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인턴이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도 하더군요. 같은 팀으로 배정받았던 사람들도 자리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던데다가 자기 일이 바쁘다면서 잘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으로도 낙후되었다고 느낀 포인트도 많았습니다. 공공기관 납품을 위한 소프트웨어라 그런지 레거시 기술 스택을 사용했고, 그래서 관련 자료를 찾기도 어려웠으며, 형상 관리도 git을 쓰지 않았고, 과제에 대한 코드 리뷰 역시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사의 문화적•기술적인 환경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일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적어도 2년 간은 해야 할 일인데 말이죠. 저와 함께 입사했던 한 명의 동기는 현명하게도 몇 일 일하다가 이건 아니다 라면서 빤쓰런했지만, 저는 그래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다는 약속 하나만 바라보고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입사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근무태도 불량을 이유로 해고를 통보받았습니다. 딱 그 소리를 듣자마자 진짜로 머릿속이 새햐애지면서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산업기능요원 편입 하나만 보고 많은 걸 투자했는데, 한 달만에 계획이 모두 틀어졌습니다. 모든 원인이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았고,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모든 정신적 고통을 온전히 받아내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부모님과 전화 통화로 이 사실을 이야기하다가 너무 죄송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VR 솔루션 스타트업에 들어가다

꼰 제발 아무데나라도 가자…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좀 늦게 복학해도 괜찮으니 그냥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게 어떻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냥 이대로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그리고 오기가 발동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구직의 길에 올라섰죠.

이 때는 서울에 자취방 근처에 있는 모든 회사를 대상으로,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산업기능요원 편입이 가능한 회사면 일단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그 중에서 VR 솔루션 스타트업(이하 C사)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대표와 면접을 보는데…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부모님 뭐하시는지, 집이 근처면 야근해도 괜찮겠네, 인턴 기간에는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할 수 있겠냐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질문들이지만, 당시에는 어떤 회사든 간에 취직해서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뭘 하는지 대답했고, 야근도 할 수 있겠다고 했고, 일찍 출근과 늦게 퇴근도 할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열심히 굴려달라고(?) 노예 포부를 밝힌 게 마음에 들어서인지, 면접은 합격했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면 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작은 회사라 그런지 개발팀인데 코딩테스트도 안 본 건 함정…

회사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직원들끼리의 분위기 자체는 전 회사보다 좋았습니다.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꽤 많아서, 직원들끼리 서로서로 잘 챙겨주는 분위기였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외국인 개발자들이 많아서 거의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영어로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영어 회화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다보니 특정 분야 포지션을 맡아서 했다기보다는 이것저것 잡일하는 개발자로써 본격적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랜딩 페이지 제작같은 마크업 위주의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제대로 할 줄 아는 언어가 C++ 밖에 없었는데, 그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보니까 JavaScript 문법도 잘 모르고 컨벤션을 따라가는 게 벅찼습니다. 그냥 제가 웹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었어요.

일례로, 한 시니어 개발자가 제 컴퓨터에 개발 환경을 세팅해주면서 여러 리포지터리를 로컬에 클론해서 각 리포지터리마다 디펜던시(npm install)를 설치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node고 npm이고 나발이고 간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상태여서, 그 시니어분께 (외국 개발자여서 영어로) 물어봤습니다.

왜 npm을 각 리포지터리마다 까는 거에요..?

그 때의 시니어가 저를 쳐다보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군요. 아무튼 예전에는 이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JavaScript가 좀 익숙해질 때 쯤에는 AngularJS 기반의 웹 어플리케이션을 유지보수하고, 기타 각종 솔루션들의 관리하고, 고객에게서 기술 지원 요청이 오면 직접 원격으로 디버깅(?)을 해주는 등 잡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렇게 야근과 삽질을 반복해가면서 웹 프론트엔드의 기초를 (더럽게) 닦았죠.

대표가 저에게 눈치를 주긴 했지만, 수습기간인 3개월동안은 잘 버텨서 결국 바라던 산업기능요원 편입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여기 역시도 좋은 회사라고 하기에는… 직원에 대한 회사의 투자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뭐 당연히 최저임금 받으면서 일했구요. 개발 문화도 사실 코드 퀄리티를 중요시하기보다는, 제한 시간 내에 나온 결과물이 잘 동작하는지 만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불만사항들이 누적되면서 회사에 대한 애정도 점점 식어갔습니다.

Vue를 배우다

Vue React 말고 Vue로 Go.

그러다가 회사에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새로 진행하게 됩니다. 바로 PHP와 AngularJS 로 작성된 낡고 무거운 기존의 레거시 웹앱을, Vue로 마이그레이션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뭐 사실 회사에서는 React와 Vue 중에서 고민을 했고 Vue를 골랐다고 하는데, 당시에 저는 주니어였기 때문에 결정권은 딱히 없었습니다. 하자면 해야죠, 뭐.

아무튼 그 때부터는 거의 프론트엔드 포지션을 전문적으로 맡게 되었고, 거의 1년 간의 시간을 마이그레이션하는데 쏟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Vue를 배우게 되었죠. 기존에 작성된 프로그램을 유지보수하는 게 아니라, 내가 처음부터 구조를 새로 기획하고 만든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프로젝트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복잡한 웹앱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외부 기업과 우리 솔루션을 어떻게 연동할지 같은 고민들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기술 블로그 역시 그 과정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힘을 쏟을 수 있는 프로젝트다보니,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이 느껴졌습니다. 그 과정들을 기록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마음만 먹고 있던 기술 블로그를 새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너십을 갖게 되니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 당시에 겪었던 일들이나 공부한 것을 포스트로 썼던 것이 꽤 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오픈소스에 PR도 보내봤구요. 사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좀 있긴 했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내가 많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 때가 가장 열심히 일했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이직을 결심하다

번아웃 하… 요새 왜케 일이 하기 싫냐…

그렇게 1년 정도 일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재미가 없고 지루해짐을 느꼈습니다. 번아웃이 찾아온 것이죠. 여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발적인 면에서 찾아보자면, 원래 마이그레이션 중이던 프로젝트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를 베이스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를 베이스로 하고 있었는데,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다보니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를 베이스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고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갑작스럽게 약속된 듀 데이트에 맞춰 개발 일정이 당겨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프로젝트에 투입된 기획자가 기획을 너무 잦은 주기로 바꾸다보니, 개발이 기획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사실 애자일적으로 생각해보면 잦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잘 구성했어야 했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물리적인 시간 앞에서 극복될 수 없더라구요. 아무튼 어느 순간부터 프로젝트의 방향이 제가 생각하고 있던 방향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처우 개선에도 좀 불만을 느꼈습니다. 1년차가 지났음에도 연봉 인상이나 협상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 1년이 지나고부터 동기부여가 제대로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같이 일하던 병특 친구들은 하나 둘씩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했기 때문에, 저도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에서 더 이상 머무른다고 해서 내가 발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죠.

이번의 이직은 1년의 경력을 가지고 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기술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더 나은 개발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를 찾아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즉, 지금의 경력을 바탕으로 나에게 발전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찾았죠. 그래서 총 8개의 회사를 지원하게 되었고, 여성 패션 커머스 플랫폼 스타트업(이하 D사)에 최종합격하게 되었습니다. D사 역시 PHP로 작성된 레거시 웹앱을 Vue 로 옮기고 있던 터라, 면접에서도 이 부분을 많이 어필했는데, 그 점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직을 준비하면서도 줄줄이 불합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이직을 하게 된 사유라던가 더 나은 개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내가 노력했던 것들을 물어볼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제가 그렇게 평소에나 예찬하고 다니는 『소프트웨어 장인(Software Craftsmanship)』입니다. 저는 이 책을 되게 감명깊게 읽어가지고 면접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다니고 있던 C사에 이직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붙잡더군요. 낮게 처우해준것은 미안하다, 앞으로 개선을 약속해주겠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거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 중인데 거기에 참여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번아웃으로 마음이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 일을 지속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서 작별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의의를 꼽자면 회사의 규모에 비해 개발 환경은 잘 갖춰져 있었고, 친절한 동료들 덕분에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패션 커머스 플랫폼 회사로 이직하다

이직 두근두근했던 첫 이직

그렇게 작년 이 맘때 쯤 D사에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좀 놀랐던 점은 사내 문화 정착을 위해 되게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입사한 당일날 회사의 굿즈가 담긴 웰컴 키트를 받았을 때라던가, 사람들이 직접 축하 인사를 해주러 자리까지 찾아왔던 것도 그렇고, 새로 입사한 사람들을 위한 온보딩 프로세스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그런 노력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입사를 존중해준다는 느낌도 들었고, 예전에 다녔던 회사들의 첫 인상과는 다르게 배려받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개발적으로는 기존에 배운 Vue에다가 TypeScript를 추가로 쓰면서 인앱 웹뷰라던가, 입점한 셀러용 대시보드, 내부 어드민용 백오피스 페이지들을 제작했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주로 PHP로 된 코드를 유지보수 하는 일만 맡아서 사실 재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뭐 마이그레이션 작업도 많이 했고, 이것저것 아우르면서 잘 하고 있어서 재밌게 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테스트 코드 작성이라던가 코드 리뷰 같은 것도 이 곳에서 처음 경험해본 문화였구요.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다 능력있고 치열하게 일해서 본받을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실수로 1인분의 몫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을 때,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을 때가 개인적으로는 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복지도 전의 회사와는 다르게 직원에게 투자를 잘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비 지원도 그렇고(C사에서 개발용으로 받은 맥북은 11년 모델…) 사무실도 쾌적했고, 도서관이나 스터디처럼 개인 성장도 지원해줘서… 그냥 사실 이 전 회사와 비교했을 때 모든 게 다 감사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입사 직후와 비교했을 때 회사의 규모도 엄청 커졌습니다. 매출이나 활성사용자 같은 수치들이 거의 J자 그래프 형태로 올라가는 것을 공유받으면서, 내가 이렇게 유의미한 앱의 트래픽을 경험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내가 만든 소스코드의 책임 또한 커진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구요. 저는 이미 떠오르고 있는 로켓에 운 좋게 일찍이 탑승했다 고 생각해서, 이런 경험들을 해 보는 것이 아직도 되게 신기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뭔가 갑자기 회사 홍보가 된 거 같지만) 아무튼 D사로 이직을 한 후로부터는 처우에 대한 고민은 없이 1년을 잘 다녔고, 그렇게 지난 달 말에 산업기능요원 복무만료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론

끝 아무튼 나는 끝…!

별건 아니고… 여기까지가 그냥 제 지난 3년 간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능력이 없어서 처음에 구직하는데 너무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좀 속된 말로… 나의 X된 미래를 미리 체험해본 느낌이랄까요?

부모님도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지금은 나름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입니다. 며칠 전에는 이전 회사에서 같이 병특을 했던 친구들을 만났는데, 더 좋은 회사를 간 분도 있고, 자기 회사를 차린 분도 있고… 다들 제가 알던 친구들이 맞나 싶었습니다. 다들 잘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이제 저는 민간인이 되었지만, 혹시나 산업기능요원 관련해서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편하게 댓글로 달아주시면 제가 아는 한에서 도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복무 기간동안 함께한 C, D사 동료 분들께는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ㅎㅎ)